[두모악편지 2005/03/05] 다섯번째 편지

 

* 이전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김영갑이 작성한 두모악편지입니다.

 

내가 제주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어도 때문이었다. 상상 속의 섬 이어도의 전설에 홀렸다.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녔다. 오지 마을마다 걸어서 꼼꼼하게 살폈다. 해안 마을, 중산간 마을, 섬 중의 섬을 누볐다. 몇 년 동안 헤매인 다음 중산간 들녘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용눈이였고, 다랑쉬였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어도를 찾기 위해 제주의 역사를 공부해 나가면서 이어도를 만든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힘들게 노동을 해도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제주사람들은 마음 속에서 이어도의 꿈을 키웠다. 이어도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왔던 것이다.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된다. 그렇게 일상이 반복되는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내일보다는 오늘이 내게는 소중하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오늘이 소중하다. 나의 내일은 예측할 수 없다. 오늘은 춥고, 배고프고, 불편하지만 부지런히 일에 몰입하다보면 내일은 분명 끼니 걱정, 잠자리 걱정 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뿌린 만큼 수확하리라 믿었다. 삶의 마지막 고지까지 내몰려 절망과 희망의 경계를 오락가락 했다. 이제 가망이 없다고 체념하고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빛이 보인다. 몇 달 나아지는가 싶으면 또다시 절망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나는 이어도를 보았다. 살고 싶다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마저 놓았다. 너무도 편안했다. 거동이 불편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노인들은 절망 저편의 희망을 꿈꾼다.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시작된 제주생활이기에 기대 없이 출발했다.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다가 포기하려 했다. 이 땅에서는 전업사진가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만류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출발했기에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았다. 능력도, 재능도 없는 내가 한길만을 고집한다고 남들이 보고, 느끼고, 깨닫지 못한 것을 사진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씨를 뿌리고 간절히 소망한다고 금새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어야 싹이 돋는다. 알면서도 조바심에 서둘렀다. 나는 바보였다. 아니 어리석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스스로에게 해낼 수 있다고, 해내야 한다고 채찍을 가했다. 한눈 팔지 않고 일에만 전념했다. 의욕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다그쳤다. 일가를 이루겠다는 욕심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늘 서둘렀다. 잠시도 내 몸을 한가롭게 놓아두질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견뎌내었는지 기특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지나간 시간들이 떠오른다. 하루의 대부분은 과거를 돌아본다. 절망 속에 고통스럽다고 오늘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내일은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린다. 한눈을 팔지 않으려고 갤러리 공사에 전념한다. 어두워지면 직원들은 모두 돌아가고 혼자 있다 보면 진통이 심해지고 그러면 잡생각에 시달린다.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서 걷는다. 온 몸에 힘이 빠져 걸을 수 없을 때, 카메라를 메고 동서남북 정신없이 떠돌던 그때를 생각하며 웃는다. 참으로 그때는 행복했다. 그런데 나는 행복을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건강할 땐 내일을 믿기에 오늘에 충실하려고 했다. 지금은 내일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오늘에 충실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