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편지 2004/07] 한라여 은은하고 황홀한 속살이여 - 스카이라이프 57호

* 이전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김영갑이 작성한 두모악편지입니다.

 

한라여 은은하고 황홀한 속살이여

 

<둔오름으로 가는 길>

 

20년을 허비한 탓에 한라산이 내 손금을 들여다보듯 훤하다. 구석구석에 있는 섬중의 섬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여행전문기자들이나 작가들이 며칠 동안 머물며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제주도요, 한라산이다. 하지만 나는 한라산자락에서 태어나 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만이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현재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글로 표현하려 시도를 하건만 번번이 실패를 한다. 사진가가 사진이 아닌 글로 표현하려 하니 잘되지 않는다.

 

영혼을 사라잡아 홀리게 하는 이어도

 

사진작업을 하지 못한 5년 동안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곳이 둔지봉 주변이다. 북제주군 구좌읍 비자림 서쪽 오름인 둔지봉은 아직까지 여행객이나 제주사람들한테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련 속에서도 내가 한라산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둔지봉이 있어서였다. 내 영혼을 사로잡아 섬에 홀리게 만든 마력이 이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둔지오름 북동쪽에서 수평선과 지평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감동을 한다. 이곳 들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 적막, 평화로움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온갖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 헌데 전봇대와 건물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그 마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남서쪽에 서면 아직도 감동이 다가온다.

둔지봉은 자동차를 타고 지나친다면 전혀 호기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곳이다. 비자림에서 덕천, 만장굴 도로로 접어들면 금세 둔지봉이 눈앞에 나타난다. 둔지봉 북쪽 끝자락으로 이어져 있는 2차선 도로 양쪽에는 공동묘지가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따라 1Km정도 가면 둔지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다. 직진해서 1Km 더 가면 포장된 농로는 끝이 난다. 그곳에 차를 세워놓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책하면 둔지오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나는 주차해놓은 곳에서 보이는 둔지오름을 가장 사랑한다.

중산간 들녘 중에서 이곳을 첫째로 꼽는 것은 둔지오름 때문만은 아니다. 오름의 아름다움을 나열한다면 둔지오름은 오히려 끝부분에 자리한다. 제주의 정체성을 꼽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이 길을 꼽는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 것은 농부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철따라 아름다움이 달라진다. 유채, 메밀, 콩, 당근, 보리, 수수, 감자, 어떤 작물이 자라나느냐에 따라 풍광과 정취가 다르다. 나는 설렘으로 봄을, 여름을, 그리고 가을을 기다린다.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나를 설레게 한다.

길 양편에 펼쳐진 밭담의 선도 황홀함을 더한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이곳의 아름다움은 다른 모습을 연출하기에 굳이 어떻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나는 제주에서의 20년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둔지봉 일대는 사람을 자연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묘한 힘이 베어나온다.

이곳엔 지리산이나 설악산에서 느낄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에, 나는 사진으로 표현하려 오랜 세월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결국 표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마라도나 우도, 가파도, 비양도에서 느끼는 감정과 다르다. 나는 그곳에서 오랜 시간 명상에 잠기곤 했다. 그런 느낌이 나만의 착각이고 편견인지 궁금해 많은 이들을 그곳으로 안내했다. 뭍에서 온 여행객이나 토박이들을. 그런데 이들도 나와 같은 느낌을 이야기하며 행복해한다. 이곳엔 도시에서 느낄 수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도시에 존재하는 소리, 냄새, 빛깔, 선, 면.... 그 어떤 것도 없다.

기쁠때나 슬플 때 이곳을 산책한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그저 편안한 상태에서 걸어본다. 때로는 돌담이나 나무 그늘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하늘, 땅, 나무, 풀, 돌... 눈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현듯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때 셔터를 누른다. 이것이 바로 '삽시간 황홀'이다. 그때 '은은한 황홀'은 내 안에서 찾아온다. 이는 대자연이 주는 메세지를 해석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높이가 다르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느낌은 제각각이다. 한겨울 칼바람부는 들녘으로 사람들과 함께 서면, 시인들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데 사업가는 감기 걸린다며 서둘러 들녘을 떠나버린다. 하여 그들에겐 바람 부는 날엔 소주맛이 최고라며 전망 좋은 횟집으로 안내한다.

 

원시오름에서 부를 삶의 찬가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한라산의 속살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오름(화산 폭발로 생긴 기생화산. 한라산은 크고 작은 3백60여개의 오름으로 이뤄져 있다.) 을 추천한다. 사람들은 이것저것 물어온다. 나는 대답 대신 편안하게 보고 느끼라고 말한다.

중산간 들녘 곳곳에 원시적 건강함으로 우뚝한 오름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차를 타고 휑하니 지나치며 일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 바람 속에서 넘치는 생명의 충일한 기운 속에 버티고 서서 온 몸으로 자연의 절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앞뒤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막막함 속에 혼자 내팽겨쳐진 절대고독.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그 척박한 땅, 구멍 숭숭 뚫린 시커먼 현무암 구릉 위로 시뻘건 화산회토가 바람에 쓸리고 쌓이기를 되풀이하더니, 어느새 무너진 오름에는 하나둘 생명의 씨앗들이 자라난다. 바위투성이의 쓸모없던 오름과 평원들은 차츰 인간들에게 곁을 내주기 시작하더니 그곳은 꿈과 희망이 넘쳐나는 우리 모두의 고향이 됐다. 그 시절, 오름은 제주사람들의 어머니였다. 비탈진 구릉 사이로 힘겹게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는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어져온 시련 속에서도 꿋꿋하게 희망을 지켜왔다.

유난히 드센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해 휘고 구부러져 자라난 키작은 나무는 고통의 눈물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았다. 오름,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있기에 중산간 들녘의 생명력은 더욱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기쁨과 희망과 생명의 꿈틀거리는 힘은, 쉬이 제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먼동이 트기 전의 박명이나 땅거미와 함께 밀려오는 이내 속에 본디의 모습을 감추고 있어, 사람들은 눈을 뜨고도 감지하지 못한다.

탐욕에 물들어 진짜 소중함을 분별하지 못하고 빈 껍데기에 쉽사리 유혹당하는 사람들이 어찌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랴. 그대들이 봤다고 우기는, 겉으로 드러난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이나 제법 풍만해 보이는 볼륨도 사실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 도도한 오름이, 광활한 들녘이, 한번 보고 휑하니 지나치는 이들에게 제 속살을 쉽게 내보일 리 만무다.

그러하니, 중산간을 봤다고, 오름을 안다고 얘기하지 말라. 그대가 안개를 아느냐, 비를 아느냐, 구름을 보았느냐, 바람을 느꼈느냐, 그러니 침묵해라. 중산간 들녘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씨 뿌리고 거두며 마지막엔 뼈를 묻는 토박이들뿐이다. 최소한 그대들의 신산한 삶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오름을 경외하는 이들만이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

오름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은 제주도의 동부와 서부에 펼쳐져 있는 넓은 초원지대이다. 서쪽보다 동쪽의 오름이 아름답다. 360여개의 오름 중에서 가장 빼어난 곳을 꼽으라면 '다랑쉬'와 '용눈이오름'을 들겠다.

다랑쉬오름은 행정구역상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해 있지만, 서쪽 일부는 송당리에 딸려 있다. 비자림 남동쪽 1Km지점에 있는 오름으로,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은 달라진다. 송당 근처엔 많은 오름이 무리를 이루는데 '높은오름'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다랑쉬오름이다. 표고가 382.4m이다.

오름의 특징은 부드러운 선과 볼륨인데, 다랑쉬오름은 우아한 몸맵시의 여인에 비유된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오르면 한겨울에도 땀이 솟는다. 분화구 정상에 오르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오름의 겉모습만을 볼때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깔대기꼴의 크고깊은 분화구에 압도당한다. 분화구의 깊이는 백록담과 비슷하다. 분화구 둘레는 남북으로 긴 타원을 이루고 북쪽 방면은 평평하다.

정상에서 동쪽을 내려다보면 다랑쉬와 비슷한 자그마한 오름이 보인다. 다랑쉬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아끈다랑쉬'라 부른다. 오름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레 보인다 해 토박이들은 '월낭봉'이라고도 한다. 송당리에 사는 한 노인은 오름의 내력을 들려주며 보름달 뜨는 밤에 보는 것이 일품이라고 자랑했다. 둥그런 굼부리에서 쟁반 같은 보름달이 솟아오른다며, 내게 사진 찍을 장소까지 가르쳐주었다. 다랑쉬오름 동서남북으로 2차선도로가 나 있어 달밤에 드라이브하기엔  최고의 코스다.

구좌읍 성산읍의 경계선에 위치한 용눈이 오름은 잔디로 덮여 있다. 용이 누워 있는 듯한 모습니다.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용눈이 오름은 등성이마다 왕릉같은 작은봉우리가 봉곳봉곳 솟아있다. 오름의 남동쪽은 얕게 벌어진 말굽형이다. 남서쪽엔 알오름이 솟아 있다. 위가 밥그릇 뚜껑처럼 오목하게 패어 있다. 작은분화구인데 잔디밭이다. 북동쪽에는 위가 뾰족하게 도드라져 있는 알오름이 위치해 있다.

용눈이오름도 부드러운 선과 풍만한 볼륨을 자랑한다. 북동쪽 정상에서 보면 우도, 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서쪽에는 다랑쉬와 아끈다랑쉬가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분화구 둘레에는 커다란 봉우리 세 개가 있다. 북동쪽이 정상이고 남쪽은 평평하다. 동서쪽은 다소 트여서 말굽형 분화구다. 분화구는 동서로 기다란 타원형으로 큰 분화구 안에 세 개의 작은분화구가 있다.

 

열정이 깃든 감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라산의 정경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노래했다. 한라산의 아름다움에 도취됐던 나 역시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시, 산문, 동화, 음악, 회화, 사진, 영화. 그 어떤 분야에서도 한라산이 감추고 있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제대로 끄집어낼 순 없어 보였다. 한라산만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는 커녕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지도 못했으니 당연히 느끼지 못한 것이리라. 그러니 설명조차 안되는 것이겠지.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깨닫고, 깨달은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함과 풍족함에 길들여진 여행자들에게 내가 깨닫고 경험한 대자연의 신비를 보고 느낄 수 있게 세심하게 배려하건만, 대부분은 관심조차 갖지않는다. 더워서, 추워서, 귀찮아서,, 피곤해서 들녘을 오름을 산책하는 것을 싫어한다. 넓은 들녘의 고요와 적막함이 싫어서, 풀벌레가 무서워서 사람들 북적이는 냉난방이 완벽한 호텔이나 관광지에서 시간을 보내려 한다.

하지만 이번 여름만큼은 용기를 내서 제주가 전하는 조용한 소리에 귀기울여보길 권한다. 지난 20년 동안 다양한 계층의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라산의 비경을 보고 싶다며 안내를 부탁한다. 직업, 나이, 취향에 따라 날씨와 계절에 따라 내가 안내하는 곳은 다르다. 나는 입구까지 안내하고 차에서 기다린다. 어떤 설명오 하지 않고 편안하게 보라고 말한다. 느끼고,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흥분한 사람도 있고, 별로라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같은 곳을 다녀왔는데 생각은 제각각이다.

내가 한라산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 대신 웃는다.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다른 곳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기에 한라삼 자락에서 이렇게 세월을 허비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라산 들녘에서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본다.

고요와 적막, 평화로움... 첩첩산중이나 무인도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 평화로움과는 다르다. 이곳에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평화로움이 있다. 이에 홀린 나는 20대, 30대, 40대를 중신간 들녘을 지키고 있다. 고요와 적막 평화로움에 취해 웃고, 울다보니 어느새 20여년이 훌쩍 지났다.

부디, 이번 여름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에게도 내가 지난 20년간 느꼈던 가슴벅찬 감동이 전해지길... '삽시간의 황홀'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 '은은한 황홀'을 경험하는 기적이 내려지길...

 

글 : 김영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