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간의 황홀'과 이어도의 미학 - 안성수

‘삽시간의 황홀’과 이어도의 미학

 

안성수 (제주대 교수, 문학평론가)

 

삽시간의 황홀!

이 말은 사진작가 김영갑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한 말이다. 깨어있는 영안(靈眼)으로 하루 이틀 몰입하다 보면, 찰라의 순간에 대자연이 연출해내는 조화로운 풍광을 만날 수 있다. 그 숭고한 아름다움에 끌려 20년 동안 제주의 산과 바다에서 찾아낸 세계가 ‘삽시간의 황홀’이다. 이러한 미적 엑스터시의 상황은 바람, 햇빛, 온도, 습도 등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순간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우주의 현묘한 작용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가 불치의 병을 얻었다.

김영갑이 제주에 살면서 얻은 것은 자연에 대한 끝없는 외경심이며, 잃은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이었다. 그는 세속적 인연을 끊고 삽시간의 황홀을 찾아 외로운 고행을 지속하면서 20여 만 장의 필름을 유언처럼 남기고 홀연 저승으로 떠났다. 2005년 5월 29일, 향년 48세. 4년 반 동안 뼈가 굳고 근육이 소진하는 루게릭균과 싸우다가 조용히 우주의 빛 속으로 날아갔다.

 

 

‘중산간에 서 있으면 엑스터시를 느낀다!’

작가의 이 말 속에는 그의 제주 사랑과 사진 철학이 응축되어 있다. 제주의 중산간과 오름에 서서 비와 바람과 눈을 맞고 있으면 속세의 고통을 잊고 참자유과 참평화를 만끽한다고 고백했다. 그 황홀경 속에서 그는 언뜻언뜻 제주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이어도를 만나곤 했다. 이어도는 제주인들이 지난한 삶과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환기해내는 신화적 초월의 공간이다.

그가 렌즈를 통해 찾은 세계는 제주의 대자연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숭고한 초월경이다. 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우주적 아름다움의 신비를 쫓는 작가에게 배고픔과 가난과 고독은 오히려 그의 영성(靈性)을 단련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김영갑이 혼신을 다한 삽시간의 황홀경 찾기는 영원을 향한 확신에서 출발한다. 자연은 본성적으로 황홀하고, 또한 늘 황홀경 속에 존재하지만 세속적인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먹고 입고 즐기는 세속적인 삶과의 단절을 통해서 오염된 영혼을 씻어내고 오묘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기를 소망했다.

 

 

김영갑은 자연의 위대함을 종교처럼 경배했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면서, 더불어 조화롭게 공존하는 자연이 숨기고 있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숭앙하였다. 그가 한 사람의 사진작가이기 전에 겸허한 자연주의자나 자연철학자가 되기를 갈망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예술적 수행 목표는 인간이면서 순간순간 인간세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거나 인간이 영원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삽시간의 황홀이 그의 이승에서의 예술적 탐구목표였다면, 영원한 황홀은 저승에서의 꿈이었으리라. 그가 생의 절반을 이곳 제주에 머물면서 절대 고독과 궁핍 속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는 지금 저승에서 신으로부터 영원한 진리를 카메라에 담는 방법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따금 고향이 그리울 때는 그가 예술혼을 불태웠던 제주의 중산간과 바닷가에 비와 바람과 햇살로 날아와 자유롭게 떠돌 것이다.

문득 바람 속에서 그의 어눌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는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