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2] 오름, 바다 그리고 바람이 어우러진 유혹의 섬

오름, 바다 그리고 바람이 어우러진 유혹의 섬

제주 한라산 중턱. 토박이들이 일컬어 중산간 마을인 송당리 대천동이 내 사는 곳이다. 
비라도 뿌리는 날이면 호젓하다 못해 암울한 고독감이 밀려드는 이곳에 둥지를 튼 까닭은, 10년 저편의 일이지만 제주도와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무인도와 다를 바 없는 산중 생활로 한 1년을 보낸 경험 탓이다. 
심심산 무인곡. 기름등잔으로 불을 밝히고 마실 물마저도 구하기 힘든 산중 생활은 늘 심심했다. 서른 나이 가까이 문명의 편리함에 이미 길들여진 몸과 마음이 산중 생활에 금세 익숙해지기를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지만 혼자 입성과 먹거리 모두를 해결해야 하는 산중 생활에 적응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따랐다. 다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다. 마음을 다잡는 일이 더 걱정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이전의 나’를 둘러싸고 있던 껍질부터 버려야 했다. 아침, 저녁으로 치르는 ‘사진’과의 실랑이를 끝내고 비는 시간은 또 다른 시험이었다. 이건 한가함 정도가 아니라 사지가 다 녹아내리는 무료함이었기에 하루하루 사정에 맞춰 소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노루가 되기로 했다. 숲의 구석구석, 계곡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갖가지 버섯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하고 갖가지 이끼들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듯 챙기기도 했다. 지천으로 널린 더덕, 도라지, 두릅, 머위, 양하, 멜순(선밀나물)등이 좋은 찬거리가 되어 주었고 철 따라 익어가는 산열매는 허기를 달래 주는 간식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는 온갖 물상들은 ‘또 다른 나’를 빚어내는 자양분이 되었고 더불어 세월의 흐름마저도 잊었다. 
‘집’은 표고버섯 농장의 관리사였다. 하지만 산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들이 많다보니, 농장의 붙박이 일꾼
인 노인과도 소 닭 보듯 데면데면 지냈다. 노인은 말하자면 산사람이었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산에서 살았고, 가족들이 사는 도회지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답답증 때문에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산중으로 들어와 혼자 지내는 노인이었다. 산중 생활에 재미를 들여가는 서른 나이의 젊은이가 노인은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나 보다.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산에서 내려 보내려고 안달이었다. “산은 요사스러워서 사람을 홀리는 법이여. 한번 홀리게 되면 절대로 산을 떠나지 못해. 산에 맛 붙이고 인생 망치지 않는 놈 못 봤어.” 노인의 걱정은 반쯤은 협박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1년이라고 잘라 말했다. 노인의 입에서 줄줄이 꿰어져 나오는 산중 생활에 빠져 일생을 망쳤던 사람들, 사람들... 남들에게 뒤처져 머지않아 후회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노인의 걱정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눈치 보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한편, 노인의 타이름이 거듭될수록 나는 나대로 고된 농장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평생 산중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노인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이 쌓여갔다. 분명 그것은 범상치 않은 인생의 신비일 텐데. 잘하면 나도 체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더욱 산중 생활에 몰입해 들어갔다. 그나마 뜸하던 도시 나들이도 삼가고 산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산중에서 보냈다. 그러나 1년이라는 시간으로는 모자랐다. 노인이 한평생 가다듬은 삶에 대한 혜안을 본받기엔 역부족이었고, 노인에게 장담한대로 1년을 채우자 나는 미련 없이 ‘집’을 떠났다. 
그 후 새로운 거처로 정한 곳이 대천동이다. 중산간 외딴집에서 외부와 접촉을 끊고 자연을 벗 삼아 자연인으로 사진만을 작업하며 지냈다. 그렇게 쌓아온 세월이 벌써 10년이다. 십 년 세월 동안 사진만을 짝사랑하며 일상적인 삶의 방식을 거부해온 나를 두고 어떤 이는 부러워하고 더 많은 이들은 ‘정신 빠진 놈’이라는 걸진 표현으로 동정 아닌 동정을 보낸다. 처음 한동안은 그들에게 나를 이해시키려고 필요 이상의 설명을 늘어놓는 것도 일이었다. 이제는 그들의 궁금증을 앞질러가 내가 먼저 ‘미 친 놈이라서...’ 하는 요령도 생겨났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 자신이 영락없는 필부이면서도, 그만저만한 필부들의 삶을 거부한 채 사진만을 고집하는 내 옹고집을 그들에게 이해시킬 묘안이 내게는 없다. 더구나 10년 동안 버텨온 옹고집을 대변할 사진이 내게는 없다. 언제일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오고야 말 ‘그날’을 위해 벙어리 냉가슴으로 사진만을 짝사랑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아쉬운 대로 10년 세월이 내겐 소중하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았고, 노인이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산중 생활의 맛을 내 식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사진으로 표현해야 할 나만의 화두가 있기에 요즘의 하루 해는 너무 짧기만 하다. 누가 인간을 삼라만상의 우두머리라고 치켜세웠던가? 일주일만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아침의 여명을 지켜보노라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화자찬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자연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있다. 보고자 하지 말고 느끼려 한다면 분명 순간순간 그 기운과 만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안개가 자욱한 때도, 바람이 심한 날이나 칠흑의 한밤중에도 신비스러운 기운은 늘 존재한다. 그 신비로운 기운 덕에 사람이거나 짐승들이거나 나무, 물 등 삼라만상 모두에 생기가 넘쳐난다. 그 신비스러운 기운 덕에 사람들은 자연의 품에 안기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바닷가 마을에 가면 온종일 바다를 벗 삼아 지내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도회지에서 편하게 살아야 한다는 자식들 꼬임에 따라 나섰다가 다시 옛터로 돌아와 홀로 생활하는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자연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더 많은 세상은 느끼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을 느끼려고, 표현해 보려고 아침, 저녁 바람을 가르며 오름으로, 바다로 내달린다. 고백하건대, 하고 싶은 사진만을 작업하기에 제주도는 여건상 어려움이 많다. 환상적이라고 하는 제주도 풍경을 사진으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주도만을 고집하는 것은 일만 팔천의 신들이 살아 있어 ‘느낌이 강한’ 자연이 곧 제주도이기 때문이다. 느끼는 자연,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 우리의 감성을 향해 열려 있는 자연, 느낄 수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그 자연의 신비를 사각의 평면(사진)에 담아낼 수 있는 그때를 위해 나는 여전히 고집할 것이다.  
제주도 사진만을...


김영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