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편지 2005/03/24] 일곱번째 편지

* 이전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김영갑이 작성한 두모악편지입니다.

 

20년 전 오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매스컴이나 관광안내서에도 오름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주로 백록담 주변의 고산지대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그렇게 모두들 한라산 하면 백록담을 연상했다.

백록담도 오름이지만 오름으로서보다는 물이 고여 있는 분화구로 기억했다. 해발 1.950미터의 한라산은 한반도에서 백두산 다음으로 높고, 남한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높은 산이 드문 땅이기에 사람들은 천고지 이상의 고산지대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한라산을 이루는 360여 개의 오름,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된 중산간 지역 오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년 전 중산간 오름들에는 찾는 이가 없었다.

온종일 돌아다녀도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운이 좋은 날에나 목동들과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약초꾼들마저 찾지 않는 중산간 오름은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이곳의 풍경을 완성하는 이들은 농부들이다. 유채, 감자, 당근, 콩, 메밀, 조, 산디(밭벼), 목초 등 …. 어떤 곡식을 재배하느냐에 따라 그곳의 풍경이 달라진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흔적만큼이나 중산간 들녘의 모습은 다채로웠다.

평화로운 이곳에 태어나 씨를 뿌리고 거두며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궁금함을 풀기 위해 20년 동안 몰입했다. 오름의 이름과 소재지, 분화구 형태나 크기, 그곳에 서식하는 식물이나 곤충 …. 이런 것에는 처음부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름이 토박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만 호기심을 집중시켰다. 그 중에서도 고산지대의 오름은 제외시키고, 사람들의 삶의 무대인 중산간 오름들로 한정했다. 특히 다랑쉬와 용눈이 오름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20년 동안 줄기차게 중산간 오름들에 매달렸다. 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제주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척박함 속에서도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다면,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그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믿었다.

도둑도, 거지도, 대문도 없는 땅에서 살았던 토박이들로부터 나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할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제주도 토박이들은 부지런히 일해도 배가 고프고 절약하고 검소해도 늘 부족한 생활에 섬에 태어난 것이 원통하다고 탄식했다. 그렇게 섬을 떠나려 했다. 그러나 떠날 수 없는 이들은 마음속에 이어도의 꿈을 키웠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단한 삶에 눌려 주저앉는 대신, 이어도라는 꿈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충실하게 현재의 삶을 일궈나갔다.

그렇게 나는 그들이 누리는 평화로움의 비밀이 바로 이어도였음을 깨달았다. 관광산업이 제주사람들의 생명산업이 되었다. 제주사람들은 이제는 이어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방목장으로 사용되던 드넓은 초원은 골프장으로 변하고, 아름다움이 빼어난 중산간 들녘은 리조트와 팬션으로, 별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제주사람들의 마음에서 이어도는 지워지고 있다. 이 땅에서 제주다움이 사라질수록, 제주인의 정체성을 잃어갈수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어도의 비밀은 잊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