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오름'의 적막한 풍경을 사랑했던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가 잘 포착되어 있다. 다빈치 제공

은근한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이 꼭 방문하는 곳이 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제주를 사랑했던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뭍사람 김영갑은 '내 안에 부는 바람을 어쩌지 못해 전국을 떠돌다가 바람 타는 섬 제주에 정착'했다. 서른 살을 앞둔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작가는 바람 가득한 한라산 기슭에서 영혼의 자유를 만끽했다. 해발 200~600m 지대를 일컫는 '중산간'에서였다. '중산간'은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기생화산인 '오름'이 360여 개나 솟아 있는 덕분에 이국적인 정취가 그윽해서다.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 / 김영갑

작가는 태고의 적막에 감싸여 수행자가 되고,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었다.

작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를 투사하고 싶었다.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부는 날이나' 가리지 않고 '노루가 되어' 서성였다. 그저 지나가다 찍은 여행 사진이 아니라 수만 시간을 붙박혀 한 장 한 장 새겨낸 것이다.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에는 김영갑 작가가 중산간 기슭에서 보낸 나날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바람 부는 '오름'을 응시한 대표작 65컷이 잠언 같은 글귀와 함께 실려 있다.

사후 10주기를 기념하는 동명의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전시회(6월 27일~9월 28일)의 도록이기도 하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제주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없다.' 작가의 설명이 붙은 사진 속에는 바람이 뉘인 억새 군락 너머로 유장한 곡선미의 '오름'이 구름을 이고 서 있다. 과연 '이곳 들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가 물씬 배어나는 장면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오름'을 휘감아 불어오는 바람이 귓전을 때리는 것 같다.

김영갑 글·사진/다빈치/152쪽/2만 2천 원.

김승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