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김영갑 갤러리와 제주올레 3코스
제주로 가는 길, 항상 마음이 설렌다. 비행기를 타는 건 조금 싱겁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제주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지난 10일 제주여행의 첫 시작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정했다. 예전 올레길 3코스를 걷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지나쳤던 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김영갑 갤러리도 들르고 올레길 3코스를 걸어서 표선까지 갈 생각이다.
공항에서 100번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닿아 삼달리 가는 표를 샀다. 급하게 타다 보니 일주도로로 돌아가는 버스다. 버스 기사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표선으로 바로 가는 버스도 있단다. '조금 더 기다릴 걸'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버스는 제주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버스가 동쪽해안마을을 지나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파란바다를 보면서 차가 달린다. 해안마을을 빠짐없이 들렀다 간다. 제주 풍경이 살갑게 보인다. 돌담이 쳐진 낮은 집들과 파랗고 빨간 지붕들은 바닷가에 바짝 붙어서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조천·북촌·성산을 지나니 유채꽃과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삼달리에서 내리니 김영갑 갤러리까지는 1.4km를 걸어야 한단다. 도로는 한적하다. 터벅터벅 걷는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라는 안내판을 마주한다.
바람과 구름이 머무르는 공간
▲ 삼달국민학교 폐교를 전시실로 개조한 김영갑갤러리두모악
▲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 들어서면서 만난 사진
김영갑은 누구인가? 그는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2년부터 제주도를 사진에 담기 시작하더니 1985년에는 아예 제주에 정착한 사람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제주의 풍경을 찍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희귀병 루게릭병이 걸린 것이었다.
"나는 구름을 지켜보면서 한 걸음 내딛기 위해 이를 악물고 서 있다. 구름이 내게 길을 가르쳐줄 것을 나는 믿기에 뒤틀리는 몸을 추슬러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그는 삼달리 폐교에 들어와 사진 갤러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02년에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을 따 김영갑 갤러리를 열었다. 하지만 투병생활 6년여 만인 2005년 5월 29일, 49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이 만든 갤러리에서 한줌 흙이 됐다.
입구에 들어서니 깡통 인형이 '외진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폐교 마당은 제주 돌담과 덩굴식물들이 어울려 있고, 담장 밑으로 수선화가 피어 있다. 제주다운 정원이다. 갤러리 입장료는 3000원. 안에 들어서니 김영갑이 생전에 작업실에서 찍었던 사진이 먼저 인사를 한다. 전시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전시실이 시작되기 전, 생전 인터뷰 영상물을 만난다. 몸이 야위어 가면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한 사진가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첫 번째 전시실인 '두모악관'에는 하늘과 구름을 표현한 사진들이 있고, 또 하나의 전시실인 '하날오름관'에는 오름과 바람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다.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전시실. 노트에는 다녀간 사람들의 숨결이 남겨져 있다.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뒤뜰에는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져 있다.
사진에서는 바람이 불어나온다. 구름은 색깔을 바꾸면서 하늘과 다투고 있다. 전시된 사진은 파노라마 사진이다. 넓다. 엄숙하면서 장엄하다. 거기에 바람이 지나가면서 사진은 살아 움직인다. 뒤뜰로 나가니 김영갑의 삶과 애환이 겹쳐진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져 있다. 시린 풍경이다.
전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