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앓는 김영갑씨 2005년 1월 전시회 준비
 

몹시 야위었다. 78㎏이던 체중은 50kg에도 훨씬 못미친다. 죽으로만 끼니를 때운 지 벌써 4년째다.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 '두모악 갤러리'의 주인인 사진작가 김영갑(47)씨. 루게릭병(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그는 이제 앉아 있을 기력조차 없다. 그는 이제 불꽃 같았던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그는 1985년 제주에 정착했다. 사진에 매달려 살다 80년대 초반 제주로 몇 번의 사진기행을 하고 나서 제주 섬에 반해 눌러앉았다. 그는 밤낮으로 섬을 헤집고 다니며 셔터를 눌러댔다. 지나는 길에 밭에서 당근을 캐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고, 간첩으로 몰린 적도 여러번 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쟁이'의식과 '끼'덕에 그가 찍은 제주의 풍광은 "그림이 아니냐?"는 감탄을 샀다. 수십 개 라면박스에 들어있는 '자식같은' 20여만 컷의 필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99년 한 전시회를 마친 뒤 그는 돌연 손이 떨리고 다리가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카메라는 커녕 숟가락을 들 힘조차 사라졌다.

2001년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국내에 1500여명이 같은 병명으로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해 뒤 그는 폐교 하나를 빌려 '두모악 갤러리'를 차렸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거기서 자신의 사진들을 전시했다.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그저 "제주땅에 대한 마지막 봉사"란 생각 뿐이었다.

 "그나마 아직 살아있는 것 만도 제주란 대자연 덕이죠. 저는 조만간 사라질 테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제주가 신이 내린 축복의 섬이란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오는 26일 오후 7시 제주도 문예회관에선 그를 좋아했던 제주의 지인들이 모여 그를 돕기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연다. 제주 밖에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내년 1월 10~1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그의 마지막 행사가 될지도 모를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제발 내 안의 생명의 기운이 그때까지만이라도 버텨주었으면…." 그의 마지막 소원이다.

제주=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