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투병 사진작가 김영갑씨 타계

루게릭병으로 숨진 사진작가 김영갑씨.

 
불치병 투병속 제주 사랑 사진에 담아와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제주도에 내려와 20년이 넘게 제주 풍광을 담아온 사진작가 김영갑

(金永甲 48, 김영갑 갤러리 대표,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1리)씨가 29일 타계했다.

김씨는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돼 이날 오전 9시30분께 제주시 '한마음병원'에 도착했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7년째 불치병인 루게릭병을 앓아온 그는 최근에는 온몸이 마비되고 미라처럼 바짝 말라

전화조차 받기 어려운 상태였다.

부여 태생의 김씨는 섬에 살아보지않고는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지난 85년 제주에 정착, 아름다운 제주풍광을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카메라에

담아왔다.

한라산과 중산간, 제주의 오름(기생화산), 주변의 억새,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시적인 풍광,

노인과 해녀, 마라도, 바다 등 제주의 모든 것들이 그의 표현 대상이었다.

그런 그에게 지난 99년 루게릭병이 찾아왔다.

젊은시절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사진작업을 진행하다 제주에

정착한 그는 2002년 폐교된 초등교 삼달분교를 개조해 사진 전문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열었다.

그는 거동조차 어려운 속에서도 제주도의 서정적 이미지와 섬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병마와

투쟁하는 자신이 이야기 등을 엮은 포토 에세이집 '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펴내기도했다.

그동안 17차례나 개인전을 열었지만 누구를 초대한 적도 없고 사진을 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루게릭병 투병중 타계한 사진작가 김영갑씨.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제주에서 한때 동굴같은 곳에서 숙식을 해결해야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루게릭병이 발병해 처음 병석에 누웠을 때 형제와 가족들이 찾아와 서울에서 치료를 받자고 제의

했지만 끝내 이를 물리쳤다.

제주를 무척이나 사랑한 그는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라는 생각을 끝내 가지고 간 외로운

사람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사진작가 김영갑을 위한 음악회가 제주도 에서 열려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 음악회는 김씨의 사진 갤러리 후원자인 '두모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병마와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씨를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에 몸을 맡긴 채 홀로 생사를 넘나드는 외로운 삶을 꾸려온 김씨의 감회는

이날 남달랐다고 주변 인사들은 전한다.

그가 한 전시회에 붙이는 글을 통해 밝힌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한데 중도에서 낙오됐다고 모두 안타

까워하지만 난 결코 멈추지 않으렵니다." "모두의 사랑과 채찍이 헛되지 않도록 삶의 열정을 잃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렵니다."라는 표현은 그의 삶을 단적으로 엿보게 한다.

김씨의 타계 소식에 그동안 그를 도와왔던 '김영갑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그와 마주앉아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며 허탈해 했다.

김씨의 장례 일정은 29일 오후 그의 가족들이 제주에 도착한 뒤 결정된다.

이기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