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찍은 제주…폐교갤러리에 '한가득'
 
루게릭병 김영갑씨, 20여년 공들인 작품 전시

“어떤 환경에서건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값진 것이라고 선생님께서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잖아요. 선생님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있습니다.” 폐교가 된 지 16년이

지난 남제주군 표선면 삼달초등학교 우편함에는 매일 편지가 수북하게 배달된다.

전국의 곳곳에서는 물론, 캐나다와 미국에서 오는 것들도 있다.

“선생님의 에세이집을 읽고 잊혀졌던 내 꿈들이 살아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올해 초 출판한 사진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휴먼앤북스)를 들고와 사인을 받거나,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제 ‘김영갑갤러리’는 제주도 안팎에서 익숙한 이름이 됐다. 지난 20년간 제주도

사진만 찍어온 김영갑(47)씨는 근육신경이 마비돼 점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루게릭병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을 앓고 있는 사진작가. 그가 폐교의 8개 교실을 이어 붙여 자신이

20여년간 찍은 제주의 사진들을 내건 김영갑갤러리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를

보고 싶거나, 그가 온 힘을 기울여 만든 갤러리를 보려고 변변한 식당 하나 없는 중산간

마을 폐교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귀포시에서 성산으로 가는 16번 국도의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에게 김영갑

갤러리를 묻자 “거기 잘도 찾아왐서”라며 길을 안내했다. 이정표도 없는 갤러리를 물어물어

찾는 사람은 제주도민은 물론, 국내 관광객과 외국인들까지 끊이질 않는다. 지난 23일 갤러리를

찾은 서울의 한 가족은 “제주의 바람과 자연을 사진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3년 전 김씨가 쓰레기장 같던 폐교에 갤러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김씨는 폐허가 된 건물과 운동장에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묵묵히

해냈다. 운동장에는 흑갈색 돌담과 오솔길을 만들었고, 흙으로 빚은 토우와 층층돌 인형들을 갖다

놨다. 전시관 입구의 문은 제주 초가의 나무틀에 창호지를 바른 것과 닮았다. 감나무, 대추나무,

억새, 대나무 등 100그루가 넘는 나무들이 정원에 가득 차 있다. 모두가 바람에 잘 흔들리는 것들이다.

“제겐 이 운동장이 필름이에요. 셔터만 못 누를 뿐 끝없이 찍고 있어요.” 병으로 몸이 불편해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그에게 돌과 흙에 바람이 잠깐씩 내려앉는 갤러리 정원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갤러리는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연다. 입장료나 주차비도 따로 받질 않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엽서를 선물로 준다. 제주 땅의 소중함,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제대로 알아준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다. 요즘은 평일 50~60명, 주말 400~500명의 방문객이 다녀가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꼭꼭 숨어 있는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제주도의 그런 아름다움을 찾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해 아쉽지요.”

숨쉬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이를 악물어야 하지만, 김영갑씨는 오늘도 갤러리 창밖을 내다보고 앉아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글·사진  이보미(대학생명예기자,제주대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