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을 나의 노래
작업에만 매달리다 보니 몸이 말썽을 부렸다. 정확한 병명조차 알 수 없어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제주도에 개발붐이 일기 시작하자 나는 더욱 서둘러서 작업을 해야 했다. 더 이상 변모하기
전에 제주의 정체성을 기록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작업에만 몰입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발표도 못했는데 몸이 말썽이다. 팔다리는 마비되어 깊은 잠에 들지 못했고, 손은 자꾸만
떨리고 근육이 점점 약해지고 몸이 야위어간다. 사진기를 들 수 없다. 한 달이면 3~4Kg씩
마르는데 병명조차 모른다.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내가 살아 있을 때도 습기로 인해 필름과 사진을 매년 한 번씩
버려야 하는데, 몸져눕기라도 한다면 답은 뻔하다.
나처럼 애정을 가지고 보관해 줄 누군가 있을까? 더 이상 나빠지기 전에 전시장을 마련해
그동안 준비해 둔 작업들을 풀어놓고 싶어졌다. 갤러리를 한다면 어떤 내용들로 채울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치료에 전념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은 윤기 자르르 흐르는 제주도의 속살, 두 눈 크게 뜨지
않으면 놓쳐버릴 삽시간의 환상, 외로움과 평화로움….
단순한 풍광이나 삶의 기록이 아니라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고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뭍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제주 사람들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남다른 제주도를 보여주는 것.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수록 산 넘어 산이다. 건강도, 경제도 모든 게 불가능이다. 하겠다는
열정이나 믿음도 불확실하다. 건강할 때도 못했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완성은 어려워도 시도는 해보자.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최고봉을 오르는 산악인들처럼 한 발 한 발 정상을
향해 오르자. 정복하고 못하고는 중요치 않다. 정복했다 한들 내려와야 하는데 결과에 연연
하지 말자. 미완성이면 미완성인 대로 보여주자.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제주의 속살이다. 뭍사람들이 휴양 차, 유희 차 건너와 대충 훑고
가는 탄력 잃은 외피가 아닌, 촉촉하고 생생하면서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제주만의 속살이다.
외형이 아닌 내면이다.
1년 내내 노래 부를 수 있는 나만의 무대를 만들자. 폐교를 단장해서 새롭게 변화 시키자.
나는 변신을 꿈꾸었다.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릴수록 나는 몰입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사진 작업을 못 할 바에야 나로서는 삶의 열정을 이어나갈 수 있는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폐교된 후 학교는 삼달1리 부녀회와 청년회, 서울의 기업체 연수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폐교된 지 4년이 되었는데 잡초 무성한 밀림으로 변했다. 5년간 폐교를 임대해서 갤러리를
잘 만들어도 주인이 바뀐다면 몇 년이 지난 후 이처럼 폐허가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대충 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갤러리가 완성되는 날 문을 닫더라도 제대로 만들어보자. 최선을 다해 나만이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
20대 청년을 미치게 만들었던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환상을 운동장에 풀어 헤치고 교실에선
사진을 전시하자. 나무를 심으면 새들이 찾아올 것이고 꽃을 심으면 벌 나비가 찾아올 것이다.
제주의 소리, 빛, 선, 면, 볼륨을 운동장에 풀어놓자. 방송이나 신문, 잡지, 관공서에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제주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풀어놓자.
많은 이들이 외면했던 것들, 나만이 보여주고 싶었던 제주다움을 보여주자. 느끼고 못 느끼고는
오로지 관객들의 몫이다. 오고 안 오고, 느끼고 못 느끼고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나는 그저
노래하면 된다. 신명나게 노래하면 그뿐이다.
관심이 있으면 찾을 것이다. 그러면 보일 것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될 것이고,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깨달을 것이다. 새들이, 풀벌레들이 노래하듯 나는 노래할 것이다. 나의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 : 김영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