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病도 제주사랑 못막아”

 

 

바람이 일렁이는 제주 오름을 20년간 촬영해온 제주 사진작가 김영갑(46)씨는 더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다.

4년전부터 시름시름 앓던 증상이 2년전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으로 판명났고, 한라산 깊은

속까지 파고들며 제주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던 그는 이제 우유같은 유동식으로 연명하며 사진작업을

중단한지 오래다.

난치병에도 불구하고 작년 여름 제주도 중산간마을의 폐교를 사진전문 ‘김영갑갤러리’(064-784-9907)로

개조해 제주사진을 상설전시중이다.

그가 2일 오후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이명동사진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외부

활동이 어려운 그는 서울의 시상식장에 모습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2일 오후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사진을 위해 순교하겠다는 심정으로 일궈낸 공간이 호평을

얻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며 “요즘 건강상태가 좋지않아 위축돼있던 중이라 수상소식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전했다.

김영갑갤러리는 김씨가 2년전 제주 성산읍 삼달리에 자리잡은 4000여평 규모의 옛 삼달초등학교를

대여받아 개조한 미술관 규모의 사진전문 전시공간. 김씨가 투병중에도 사진전시용의 공간을 직접

디자인한 이 갤러리는 8개의 교실을 전시장으로, 또 운동장을 제주를 상징하는 정원으로 꾸몄다.

학교 전체가 그의 마지막 열정과 투혼이 배어있는 작품이다.

“근육 마비로 더이상 제주를 촬영할 수 없지만 사진갤러리를 통해 제주사진을 보여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병에 맞서려면 자꾸 움직여야한다는 생각에서 개조 공사때도 현장을 지켰습니다.”

힘없는 목소리지만 그는 “이곳도 어느덧 입소문이 나서 주말이면 300~400명이 찾아와 주차장이 꽉

찬다”고 소개했다.

김씨의 전시장 건립에는 레코드 앨범의 재킷용 사진을 계기로 친분을 나눠온 작곡가 김희갑씨가

4000여만원을 후원하는등 사진계 안팎 지인들의 재정적 지원이 큰 힘이 됐다. 2001년 서울갤러리

사진전등 이제껏 12회의 개인전을 열고 ‘은은한 황홀’등의 포토에세이를 펴냈지만 그로선 지난

20년간 찍은 7만여점의 제주사진 인화비용을 감당하는 것만도 벅찰 수 밖에 없었다.

남다른 제주 사랑, 사진 사랑을 보여온 그는 충남 부여 출신. 성장해 서울에 살면서도 도시탈출을

꿈꾸던 그는 82년 제주와 처음 만났다.

사진촬영차 들른 제주에서 그 신비로운 오름과 바람에 매혹당해 85년 무작정 제주에 눌러앉았다.

바람처럼 떠도는 삶을 추구하며 줄곧 독신을 고수해온 그다.

“숱한 사진을 찍다보니 발표 못한 사진들이 더 많습니다. 자칫 쓰레기가 돼버리기 쉬운 미발표작

들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실컷 전시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주사진작품을 하나라도 더 알리려는듯, 포토에세이를 준비중이다.사진을 통해

‘바람과 평화’를 추구해온 자신의 작업을 육성녹음해서 풀어낸 글에 사진을 곁들인 책은 연말쯤

나온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