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눈과 오똑한 콧날에 질끈 동여맨 댕기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노총각 김영갑(45)씨.손수 물들여

입은 갈옷에 조선시대 사람같은 우직스러움이 한눈에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서울출신인 김씨를 18년동안이나 제주도에 붙들어 놓은 것은 다름아닌 오름.철따라 시간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오름의 매력에 흠뻑 빠져 80년에 ‘오름’을 주제로 첫 전시회를 가진 후 4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아예 제주도에 눌러 앉았다.

‘끼니 때가 되면 늘 서글퍼진다.식도락의 즐거움 따위는 딴나라 얘기고,그저 허기를 채우는 데 급급하다?.

방을 구하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았다.그러나 육지 사람인 나에게 어느 누구도 방을 세놓으려고

하지 않았다.결혼도 안하고 혼자 사는 사내여서인지 특히 그랬다’(에세이집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중에서) 김영갑씨는 철저한 아웃사이더다.예술가는 외로움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존재라지만 끼니걱정에

한평 몸눕힐 공간조차 구하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김씨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는 이를 ‘삭힘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젓갈처럼 제맛을 내려면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동안 12번의 개인전을 가졌다.끼니를 거르면서도 필름값 인화지값,그리고 전시회 비용만은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자신의 작품이 매스컴에 발표되는 것은 극도로 자제해왔다.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제는 작품도 발표할 계획입니다.남이 인정해주든 말든

제 스스로 프로가 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김씨가 사진촬영을 위해 들이는 공은 남다르다.몇날 몇달 한장소를 지키는 것은 예사.오름의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10년세월을 기다리기도 했다.

“길가다 우연히 줍는 사진은 없습니다” 그는 감동을 주는 사진은 철저한 준비 없이는 탄생이 불가능

하다고 주장한다.그의 작품을 보면 사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한순간에 바뀐다.사진이라기 보다

그림에 가깝고 그림이라기 보다 ‘영상의 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하다.사진을 이렇게

찍을 수도 있을까. 그는 최근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아담한 폐교를 하나 빌려 갤러리로 단장하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고 있다. 연말께 갤러리가 완성되면 미발표 작품들을 전시하고 제주 노인들의

영정사진도 본격적으로 제작해 줄 계획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제주도의 자연이 파괴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김씨가 그동안 제주도를 소재로 사진을 찍느라 소비한 필름만해도 줄잡아 만통이 넘는다.그중에는 이미

사라진 제주도의 풍경도 많다.그의 작품을 통하지 않고는 제주도의 지난날을 볼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제 작품을 제주국립박물관에서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주도의 자연파괴를 걱정하는 김씨의

말이다.

박강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