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편지 2004/05/11] 사진작가 김영갑이 제주바람 찍은 까닭 - 경향신문

* 이전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김영갑이 작성한 두모악편지입니다.

 
사진작가 김영갑이 제주바람 찍은 까닭
 

제주도 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꼭꼭 숨어있는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 보고 느낄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한라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빼어날 수 없다. 한라산의 속살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하와이나 발리, 아니 지구상의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낙원임을 인정할 것이다.

제주도의 역사는 바람과 싸워온 투쟁의 역사이기에 눈물과 한숨의 역사이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제주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태풍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한라산은 일년 내내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 크고 작은 바람은 온갖 생명에게 시련을 안겨준다. 사람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식량 한 톨 얻을 수 없다. 초가집의 추녀는 돌담보다 낮다. 굴뚝은 마당 가운데

빗물이 스며들지 않을 만큼의 높이다. 부엌도 육지와는 전혀 달랐다. 육지에서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지만 제주도에서는 등에 지고 다녔다. 먹고 입고 잠자는 것이 육지와는 사뭇 달랐다.

어느 하나에 진득하니 몰입하지 못하고 방방곡곡 바람처럼 떠돌았다. 내 안에서 부는 바람을 어쩌지

못해 전국을 떠돌다가 바람 타는 섬, 제주에 정착했다. 제주의 바람에 홀려 20년 동안 바람을 쫓아

다녔다. 동서남북, 섬 중의 섬, 바람 지나는 길목에서 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처럼 풀처럼 시련을

온몸으로 견디며 세상을, 삶을 느끼려 했다. 아니 제주도를 이해하려 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어떤

시련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자갈밭에 씨 뿌리고 거두어도 늘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던 제주 사람들의 생명력을,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무자맥질하는 늙은 해녀들의 강한 생명력을,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헤아릴 수 없다. 경관 빼어난 호텔이나 별장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은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없다. 골프나 낚시를 즐기며 일년 내내 제주도에 머문다고 제주의

정체성을 헤아릴 수 없다. 친구들과 수다 떨면서 360개의 오름을 모두 오른다고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없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눈·비·바람에 시달리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와 풀을 지켜보며

강인한 생명력을 닮으려 했다. 야생초(野生草)는 태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쓰러져 뿌리가 뽑혀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꽃 피우고 열매 맺는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5년이 지났지만 계속되는 바람에 정신이 몽롱하다. A급 태풍 루게릭에 나의

육신과 마음은 망가지고 있다. 치료방법이 없기에 마냥 지켜볼 뿐이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이며

평상심을 찾으려 할수록 마음은 얽히고 설킨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쉽게 피할 수 있지만 내

안에서 부는 바람은 피할 방법이 묘연하다.

태풍 루게릭(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에 내 몸은 미라처럼 변해간다. 내 의지대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데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볼 수는 없다. 똑바로 서 있기도 버거운 육신을 추스르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태풍 루게릭은 언제 어떻게 끝이 날지 모르기에 나는 오늘도 뒤틀리는 몸을 추스르며 걸음

마를 배운다. 태풍을 두려워하지 않는 잡목(雜木)이나 잡초(雜草)들한테서 생명의 순환원리를 배운다.

갓난아이처럼 불안한 걸음걸이로 오늘도 나는 걸음마를 연습한다.

사진작가 김영갑씨(48)는 20년째 제주의 산과 바다, 오름과 들판을 렌즈에 담아내고 있다. 섬의

매력에 홀려 1985년 단신으로 제주에 정착했다. 남제주군 성산읍 박달리에서 폐교를 개조해 만든

‘김영갑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근육신경이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진단을

받은 그는 “자연이 병을 치유할 수 있다”라고 믿으며 투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