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리뷰]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
해와 달, 구름과 무지개, 눈과 비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충분히 표현 가능한 자연의 산물들이다. 그러나 같은 자연의 산물임에도 바람을 화폭이나 프레임으로 구현한 작품은 거의 드물다. 이유는 바람은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까지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사진 속에 투영시켰던 김영갑은 제주의 모진 바람을 카메라에 불어 넣은 작가였다. 그의 작품을 한참이나 응시한 후 눈을 감고 있으면 귓전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위치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전경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제주의 풍경에 매료되어 1985년 제주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제주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산골마을에 둥지를 틀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거부한 채 오롯이 자연에만 침잠하며 삶을 영위해나갔다.
그가 출간한 수필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살펴보면 그는 천부적인 재능이 아닌 지독한 기다림이 좋은 사진을 탄생시켰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김영갑은 책을 통해 “사진은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거는 처절한 싸움이다. 한 번 실수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특히 삽시간의 황홀은 그렇다. 그 순간을 한 번 놓치고 나면 다시 1 년을 기다려야 한다. 1 년을 기다려서 되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기다려도 되돌아오지 않는 황홀한 순간들도 있다”고 고백했다.
자연과의 교감이 없었다면 결코 담을 수 없는 순간들을 그는 담아낸 것이다.
▲故 김영갑 작가가 실제 사용했던 작업실 겸 서재
김영갑은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 흔한 라면도 먹지 못해 물 한사발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고 어쩌다 돈이 생기면 음식이 아닌 필름을 구매했다. 굶주림 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데 그는 더 커다란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굶주림 보다 더한 고통이 그에게 찾아왔다.
언젠가부터 셔터를 누를 때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루게릭이란 병마가 그의 몸을 서서히 휘감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한 후 그는 또 다른 준비를 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찍은 사진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위치한 폐교된 삼달국민학교를 개조하기 시작했고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을 따 지난 2002년 마침내 갤러리를 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두모악을 연지 3년 후 꽃들이 넘실거리는 계절에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그의 육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은 바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잔존해 있다.
▲故 김영갑 작가의 작품
▲故 김영갑 작가의 작품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들어서면 전시물 관람 이전에 그가 살아생전 남긴 인터뷰영상물을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당시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이었던 영상 속 김영갑 작가는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처연함을 자아내지만 그의 안광만큼은 칠흑처럼 짙고 윤기가 흘러 마치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사진작가라기보다 오랜 시간 고된 수련을 인고해온 ‘도인’이나 ‘명상가’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총 2개의 전시실로 꾸며져 있는데 하늘과 구름을 사진에 담은 ‘두모악관’과 바람과 오름을 사진에 담은 ‘하날오름관’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바람과 오름을 주제로 한 '하날오름관'
▲하늘과 구름을 주제로 한 '두모악관'
김영갑은 제주의 오름을 유독 사랑한 작가였는데 특히 수많은 오름들 가운데 용눈이오름은 그의 페르소나 일정도로 많은 사진 속에 녹아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의 모든 사진들에는 작품명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감상자로 하여금 상상력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모든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았다고 책을 통해 밝힌 바 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내에 마련된 찾집
생명과 맞바꾸며 손수 일군 <두모악>은 평생 사진만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다간 한 예술가의 애절함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상세위치: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
▶관람시간: 09:30~18:00(11월-2월 09:30~17:00)
▶정기휴관: 매주 수요일
▶무료관람: 7세미만, 장애인
▶이용문의: (064)784-9907
박길홍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