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하는 사진작가가 좀 많을까마는 그는 여러모로 특이하다.정작 본인은 특별한 시선이

싫은 기색이지만 어찌하랴.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결혼도 안하고, 돈도 안 벌고, 가족과도

인연 끊고, 오로지 제주도에서 사진만 찍는 이 사람을, 좀 특별나게 소개하고 싶다.

섬과 사진에 홀린 사내가 있다. 올해 마흔다섯이라는 사진작가 김영갑 씨.

한창 때인 스물일곱 살 때부터 18년 동안 오로지 제주도 사진만 찍으며 살았다. 굳이

제 집을 놔두고 집도 절도,덕분에 마누라도 없이, 혼자서만 떠돌며 살아온 세월이다.

하지만 마땅히 마음 줄 고향 없는 이들에 비하면 그만해도 어딘가. 한 곳에서만 맴돌았으니

그가 언제라도 마음 뉘일 곳은, 이제 누가 뭐래도 제주도이다.

“사실 몇 년 전에 에세이집을 낸 적이 있어요. 그 제목처럼 ‘섬에 홀려, 사진에 미쳐’

여지껏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주의 들판엔 내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어요.”

기사를 빌려 굳이 그가 얼굴을 내밀게 하는 것은 서울에선 처음 열리는 그의 개인전

(5월 15일~20일, 광화문 서울갤러리) 때문이다. 외곬으로 파고든 오랜 작업이 헛되지

않아 제주에서 그를 알아주는 이들이 많아진 지 이미 오래 전. 서너 번의 개인전이

있었고 관공서 등 곳곳에 작품이 걸려 있기도 하다. 그뿐이랴. 멀리 서울에서도 그의

인간됨과 작품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구상 시인과 작곡가 김희갑

씨 등은 그를 꽤나 아낀다는 명사들 중 일부이다. 허기진 배를 안고 온종일 다리품

팔던 그에게 자신이 쓰던 차를 내어주고 이번 전시까지 스폰서해준 이가 바로 김희갑

·양인자 부부라고. 고향 떠난 후 18년 사진작업, 서울서는 첫 선

이들이 제도권과 동떨어져 추레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 작가를 범상치 않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 그 작품을 아는 어떤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한때 나는 김영갑이 영상시를 쓰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오해했다. 아니다. 그는

시간의 기록자, 찰나를 사로잡는 시간의 사냥꾼이다. 빛의 순수함으로 존재하는 제주

섬의 나날은 그의 덫에 걸려든 그때로부터 이제껏 황홀경에 도취되어 더없이 우아하

다.’

시간의 기록자, 찰나를 사로잡는 시간의 사냥꾼이라는 말은 그가 만든 작품의 특징과

 거기에 녹아있는 노고를 대변해준다. 단순히 공간의 풍경을 느끼고 연출하는, 감상과

 기술로서의 작업이 아닌, 시간과의 싸움을 그가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의 중산

간 마을, 그는 아침마다 아무 들에 나가 앵글을 들이댔고, 같은 곳을 다음날 아침에,

혹은 저녁에, 이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제주의

자연을 사랑하고 사진에 옮기는 방식은 늘 그랬다. 번잡스럽게 두루 섭렵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천착해가는 방식…. 공간을 자르는 대신 시간을 자르는 방식…. 때문에

그의 작품은 ‘찰나가 살아있는 영상시’라고 불린다.

“6남 1녀 가운데 다섯째였습니다. 집은 서울이고 평범한 가정이었는데, 유독 저만

평범하지 않게 살았어요. 타협하기 싫어하고 순종도 싫어하고…. 큰형님이 월남전에

가셨다가 가져온 카메라가 첫 인연이었고 중학교 때 사진관 집 아들인 선배 덕에

남들보다 많이 카메라와 필름을 만지고 암실도 드나들었죠. 손재주가 있어 인문고를

 놔두고 공고 공예과에 입학했는데 적성이 아니더군요. 그나마 연극부에 들어가서

지루하진 않았죠. 연극제에서 상도 탔으니까. 카뮈와 사르트르를 읽으며 실존주의에

탐닉하고, 그러면서 늘 남들과 다른 인생을 꿈꾼 시절이었어요. 대학은 사진학과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교수들을 만나보고 나서 그마저 포기해 버렸어요. ‘정규

과정’, ‘제도권’이라는 것에 기피증이 생겼고 스무 살 청춘 때 사진기만 들고 돌아다

녔습니다.”

황금의 청춘기 동안 부모님 속을 어지간히 썩인 벌이었는지, 그에겐 자식 노릇 한번

제대로 할 기회도 없었다. 사진기 하나 달랑 메고 집 떠나 떠도는 동안 어머니가

식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 이어 무슨 이유인지 4개월 만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형제들의 질책과 만류가 있었지만, 그는 다시 집을 떠났다.

두루 다니러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아예 뿌리박을 곳을 향해 떠나는 길…, 그 길은

제주도로 열려 있었다. ‘수평의 구도가 왠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이라서,

‘왔다갔다하면서는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곳이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제주에

살기로 마음을 먹은 터였다.

노가다, 밥 도둑, 멀쩡하게 생긴 간첩…

“제주에 내 집처럼 머무르기 시작한 게 스물아홉 때였어요. 모아둔 경비로 필름값만

대고 나니 금방 돈이 떨어졌어요. 먹고 사는 거는 월 5만원이면 됩디다. 그나마 떨어

지면 노가다를 뛰고 다시 돈 생기면 필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죠. 공짜나

다름없는 셋방에 살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게 허다하고, 그러다가 밥이 너무나

먹고 싶었던 어느날은 주인집 식구들 없는 틈에 나도 모르게 밥통에 손을 대다가

들키기도 했어요. 불쌍해 보였는지 그때부터 주인 아줌마가 밥과 김치를 나눠주셨

는데, 양심이 있지 끝까지 얻어 먹을 수 있나요? 식사 때면 일부러 집을 나와 버리곤

했죠. 결혼도 안하고 직업도 없는 놈이 혼자 살며 사진이나 찍으러 다니니까 동네

분들이 간첩으로 오해한 일도 있었어요.(웃음)”

돈의 수요와 공급은 죄다 사진작업에 한정됐다. 당연히 술 마시고 친구 만나는 일은

금기. 친구는 물론 형제들조차 인연을 끊고 살았다. 만나봐야 “너, 아직 정신 못

차렸냐, 언제까지 그럴 거냐?”는 지청구밖에 나올 소리가 없었으니, 찾아갈 면목이

없었던 것. 어느 해인가, 가족들이 한데 모인 설날, 세뱃돈 안 준다고 세배하길 마다한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씁쓸하다는 김영갑 씨. 그래도 제주의 들판에

내려오면 곧바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왜 그렇게 사냐고, 왜 결혼도 안하냐고 많이들 묻죠. 무조건 제도권을 거부하고 초야

에 묻히겠다는 옹고집은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위해 계속 일하는

거예요. 남들의 인정도 받고 싶지만, 우선은 제가 만들고 싶은 작품, 제가 자족할 수

있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겁니다. 결혼요? 결혼은 현실이

잖습니까?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한 결코 이기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베풀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게 사랑 아니겠습니까? 나 같은 사람의 일상을 어떤 여자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요? 그래서 아예 생각조차 안하고 살았던 거죠.”

제주에 살고자 서울을 떠날 때 함께 따라가 카페라도 하며 뒷바라지하겠다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 앞에 놓인 길을 워낙 잘 알았던 그이기에 사랑했던 여인

을 억지로 떠밀어 보냈다.

“가진 거라곤 움막 같은 집과 창고, 카메라와 필름이 전부였던 제가 그래도 이제는

호화판 생활을 합니다. 김 선생님(김희갑)이 자동차도 내주셨고 아쉬울 때 스폰서

해주신다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요즘엔 제주에 계신 분들에게 레슨도 하고 있어서

제 작업비와 생활비는 근근히 벌고 있죠. 후회도 없고, 그렇다고 미래에 대해 거창한

희망도 없어요.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제 작업이 크게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할 뿐입니다.”

벌써 그가 촬영한 제주의 모습 중엔 개발로 인해 없어진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가

아니면 아무도 못 찍었을 제주의 삶과 풍경, 시간의 기록들…. 그가 만든 ‘찰나의

영상시’들은 이미 ‘제주의 서사시’가 되어 가고 있다.

글·이상문 기자(pooh65@chosun.com) / 사진·이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