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람’이었네

목적은 달랐지만, 몇 번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해외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과 잘 정돈된 휴양지의 안락함도 맛보았고, 회를 즐기지 않는 평소의 습성을 떨쳐버릴 만큼 싱싱한 회와 토박이들이 극찬하는 한라산 소주 한잔도 기울였다. 서울행 비행기, 나는 제주를 보았다고, 그렇다고 보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도 없는 묘한 이방인의 꼬리표를 단 채 아쉬운 이별을 고하곤 했다. 그의 사진 속에서 문득 그 아쉬움의 단서를 찾고야 말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의 삶 속에서 찾았다고 하는 게 더 옳을 듯하다.
김영갑. 사람들은 그를 사진가, 그것도 제주를 너무도 사랑했던 ‘미친 사진장이’로 기억한다. 형제도, 사랑도 뭍과의 인연을 다 거둔 채 온전히 제주를 이해하고 그것을 사진에 담기 위해 그는 낯선 제주에 둥지를 틀었다. 2005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제주의 빛과, 바람과, 바다와, 오름을 홀로 걷고 또 걸었다. 그럴 때면 훌륭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도 사라졌다. 남의 밭에 심어진 고구마, 당근으로 한 끼의 허기를 채웠어도 카메라와 함께라면, 제주의 자연과 함께라면 더없이 행복했다. 그것은 김영갑에게 오르가슴과 같은 것이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던 그는 늘 그렇게 사진만 생각했다.

20여 년을 제주에서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으로 이야기했던 김영갑. 이제 그는 떠났고 죽기 전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김영갑갤러리 두모악만이 그가 아직도 제주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증언하고 있다. 2002년 그의 손길을 거쳐 설립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 10주년을 맞았고 이를 기념해 김영갑 사진전이 열린다. 평생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바람처럼 살다간 그의 인생처럼 전시 제목도 ‘바람’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남기고 간 필름에서 찾은 ‘바람’을 만날 수 있는 전시로 그토록 사랑했던 제주의 바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사진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감상자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그의 의지를 반영하듯 그의 사진엔 제목이 붙지 않는다. 작품 역시 대부분 파노라마 사진인데 자신의 사진 주제인 ‘외로움과 평화’를 표현하는 데 파노라마(6×17) 사진이 가장 효과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서 제주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20여 년을 제주의 바람을 쫓아다녔다. 제주 토박이들의 생명력을, 바람을, 자연을 쫓아다니며 온 몸으로 제주의 삶을 느끼려 했다. 제주의 삶을 느끼지 못한 이방인의 얕은 시선. 제주를 보았지만 보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뜻 모를 아쉬움의 정체는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미친’ 예술가 김영갑. 바람이 지나가는 제주의 어느 길목에서 그는 여전히 마음으로 숱한 ‘바람’을 찍고 있을 것이다. 8월 13일부터 12월 31일까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는 제주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한 사진가의 짙은 그리움이 ‘바람’이 되어 그곳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글 설미현